올해 8월까지 접수된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1만3000여건이다. 3년 전 전체 신고 건수가 1만4000여건이라는 점을 미뤄봤을 때 지나치기 어려운 수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데이트폭력은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다.
‘데이트폭력’이 키워드로 등장한 시기는 2000년대 초반이다. 그로부터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상황은 악화일로다. 범죄 발생 빈도는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범죄 강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데이트폭력의 정의조차 법률로 규정되지 않은 상태다. 범죄는 우리 사회에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피해자들은 법적 테두리 밖에 있는 셈이다. 사실상 범죄가 방치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데이트폭력은 연인 사이에서 비롯될 수 있는 언어적, 육체적, 정서적 폭력 행위로 여겨진다. 특정 범죄가 하나의 키워드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우선 공통된 범죄로 인한 다수의 피해자들이다. 두 번째는 대중의 공분을 불러올 만큼 범죄가 심각한 경우다. 데이트폭력은 해당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
매해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의 수는 1만명을 훌쩍 넘긴다. 경찰청이 발표한 최근 3년간(2017~2019)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를 살펴보면 1만4136건, 1만8671건, 1만9940건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올해 8월 기준으로는 벌써 1만3118건이 접수됐다. 경찰청에서는 ‘데이트폭력 집중 신고기간’을 따로 지정해둘 정도다.
연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범죄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감춰진 피해 사례가 더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매년 증가하는 신고 건수에 비해 줄어드는 형사입건 수를 살펴보면 그렇다. 최근 3년간 형사입건 수는 1만303건, 1만245건, 9868건으로 매년 감소세를 보인다.
범죄 수준도 간과하기 어렵다. 데이트폭력은 경미한 폭행으로 시작해 살인, 성범죄 등 강력 범죄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데이트폭력 범죄 유형은 폭행·상해가 7003명(71%)으로 가장 많았고, 경범 등 기타 1669명(16.9%) 순이었다. 다음은 체포·감금·협박 1067명(10.8%), 성폭력 84명(0.9%), 살인 35명(0.4%) 등이었다.
피해가 커지자 데이트폭력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대책 마련이 궤도에 오른 건 사실이다. 대응책은 크게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로 귀결된다. 하지만 데이트폭력의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고, 처벌과 보호를 위해 필요한 법적 근거를 규정한 법안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일선 경찰의 데이트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은 일반신고 처리 과정과 동일하다.
그동안 국회는 데이트폭력 관련 법안을 여러 차례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의결까지 다다르지 못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데이트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은 심의도 거치지 못한 채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20대 국회에 들어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고,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 수순을 밟았다.
물론 다양한 고려가 필요해 법안이 국회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는 입장도 있다. 대표적으로 이중처벌 요소가 있다. 이미 현행법으로 처벌하고 있는 사안을 또 다른 법률로 다루는 점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데이트폭력으로 신고를 하더라도 사건은 기존 형법으로 다뤄진다. 여기에 데이트폭력 관련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한 사안에 대해 이중 처벌이 내려질 수 있는데,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범죄 발생 빈도와 강도가 매년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도적 빗장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식선에서 납득할 수 있는 처벌과 피해자 보호의 필요성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있는 만큼, 관련 기관의 적극적인 참여와 반성이 필요하다는 해석이다.
범죄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검거된 데이트폭력 가해자 6112명 가운데 67%에 이르는 4072명이 전과자였다. 1~3범 전과자가 1924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4~8범 1183명, 9범 이상 965명으로 고르게 분포돼있다.
범죄 연구 학술단체 관계자는 지난달 26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법은 없지만, 피해자들을 대변할 수 있을 만한 법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계자는 “데이트폭력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한 이후 성숙한 고려와 심도 있는 논쟁이 관통했지만, 관련 기관들의 책임 있는 행동은 생략됐다”고 해석했다.
또 “데이트폭력이라는 범죄의 심각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데 반해 피해자를 위한 실질적 대책은 부족하다”며 “여전히 쳇바퀴 도는 듯한 현실이 그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다고 해서 강력한 처벌만이 데이트폭력 피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라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예방 교육이 오히려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데이트폭력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 맞춰 해결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때”라고 덧붙였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데이트폭력 방지를 위한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데이트폭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언급된 사안이지만 오늘날 대책은 현재로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반영한다는 해석이다.
지난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맞아 “여성폭력은 보이지 않는 곳, 가까운 곳, 도움받지 못하는 곳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 모두 감시자, 조력자가 돼 근절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같은 날 “주요 법안들에 밀려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데이트폭력방지법, 스토킹범죄처벌법 등 일상적인 폭력에 대응할 수 있는 법안 마련에도 국회가 적극 나서주길 기대한다”며 “더디지만 함께 바꿔나가야 하는 일들”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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